"제도가 불법일 뿐 불법인 사람은 없어"

▲  오는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결의대회가 26일 오후 3시부터 2.28기념공원에서 열렸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마음대로 직장을 옮기며 일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회사가 문제 있어 옮기고 싶어도 마음대로 옮길 수 없습니다. 우리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기누샤(35·가명)가 외국인고용허가제(Employment Permit System, EPS)를 비판하며 일할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누샤씨는 이주노동자들을 향해 "EPS 비자 있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한 뒤 "나는 2010년에 EPS 비자가 끝났다. 많이 힘들었다"며 일할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자고 호소했다.

오는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26일 오후 3시부터 대구 2.28기념공원에서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메이데이(May Day)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롯해 시민단체와 장애인단체 등에서 200여 명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EPS 비자를 노동비자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PS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합법적인 취업을 보장해 국내 노동자들처럼 임금과 복지 등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점이 도드라지자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됐다.

EPS는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나라에서 한국어 시험을 통과한 후 구직신청을 하면 한국의 사업주가 선택해 계약하는 제도다. 이렇게 되면 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으로 들어와 한 사업장에서 3년 동안 일 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1년 10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  26일 오후 대구 2.28기념공원에서 열린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네팔에서 일어난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  26일 오후 대구 2.28기념공원에서 열린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조정훈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허락이 있어야만 최대 3번 옮길 수 있고 출국한 후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참가자들은 "사업장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라",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 노동3권 보장하라" 등의 손 피켓을 들고 이주노조의 합법적 지위를 보장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고용허가제에 대해서는 "불법인 사람은 없다"며 "제도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 후세인(42)씨는 "한국에서 일을 하면 한국에서 퇴직금 받아야 하는데 출국해야만 퇴직금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며 "하지만 출국을 해도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친구가 파키스탄으로 돌아갔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퇴직금을 받지 못해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후세인씨는 이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가족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한다"며 "고용허가제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인 아셉과 친구들도 고용허가제를 비판했다. 이들은 '기만적인 고용허가제'라고 쓴 붉은색 현수막을 들고 "일할 권리를 달라"고 말한 뒤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의 노조를 합법화해 달라는 서명 작업과 함께 대법원장에게 보내는 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서울고등법원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해도 노조결성권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에서 8년이 지나도록 이주노조 합법화에 대한 판결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